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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이야기 탐색꾼

강경원



헤르난 바스(Hernan Bas), <몇 주간 탐색한 결과_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

(After Weeks of Searching_ (The Smallest Bird in the World))>, 2015, Acrylic on Linen, 182.9x304.8x5.1cm.


얇고 긴 나무줄기가 얼기설기 엮여 있다. 줄기 사이에 있는 분홍색, 붉은색, 주황색, 민트색 반점들로 묘사된 불명확한 형체의 꽃잎과 나뭇잎은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작품 중앙에 이어져 있는 ‘U’형 줄기와 ‘ㅓ’형 줄기는 베이지색 프레임을 만들고 있으며, 틀 중앙에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한 남성과 줄기 끝에 앉아있는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새가 있다. 남성의 오른쪽에는 건너편에 육지가 보이는 바다가 있다.


연한 카키색 사파리 모자를 쓰고 재킷을 입은 남자는 정글 속을 헤집고 다니는 탐험가처럼 보인다. 그 옆에 있는 새는 남성이 정글 속에서 몇 주 만에 찾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이다. 이 새는 화면에 그려진 도상 중 높은 채도로 칠해진 존재이자 거의 유일하게 선명한 그림자를 가진 생명체이다. 때문에 새는 캔버스에 비해 크기는 작으나 화면에서 두드러져 중요한 존재로 나타난다.


몇 주 만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를 찾은 탐험가의 심정은 기쁨과 흥분, 설렘, 즐거움일 것이다. 그러나 남성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으며, 그의 눈은 공허함과 실망감에 얼룩져있다. 그는 옆으로 몇 발자국만 가면 새를 데리고 이 정글을 떠날 수 있지만, 그에게 그럴만한 의지는 없는 듯 보인다. 게다가 그의 왼손 손가락은 3가닥의 줄기에 붙잡혀 있다. 남성의 모습, 백사장과 남성을 분리하고 있는 프레임은 ‘백사장이 실제 공간이 아닌 남성이 바라는 환상 속의 먼 곳인가’라는 의구심을 불러온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았음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 스스로 바깥으로 나서지 않는 사람. 이 중 남성은 어떤 부류에 속하는 것일까.


사실 이 그림의 소재는 플럭서스(Fluxus)를 이끈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의 자전적 신화이며, 무료한 표정의 소년은 헤르난 바스 작품에서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을 상징하는 주요 이미지이다. 요제프 보이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공군 폭격기의 부조종사로 참전했으나, 그의 비행기는 러시아 크림반도에서 격추되었다. 보이스는 타타르족(Tatar)이 자신을 구조하고 동물의 지방과 펠트 천으로 상처 부위를 감싸 치료해주었다고 주장했으나, 독일 수색특공대에 따르면 사고 장소에 타타르족은 없었으며 그는 이튿날 육군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배경은 타타르족의 거주지를, 바다는 흑해를, 남성은 요제프 보이스를 상징하는 것인가. 바스는 보이스의 신화를 소재로 삼았으나 이를 직선적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 탐험가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바스의 자화상에 가깝다. 새의 발견을 탐험의 종결로 생각하지 않는 혹은 생각하지 못하는 탐험가처럼 바스에게 새로운 소재를 채집하는 일은 작업의 시발점이자 원동력이며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다.

 

미국 마이애미 출신 쿠바계 작가 헤르난 바스(Hernan Bas, 1978-)는 고전문학, 영화, 음악, 명화, 시사 등에서 낭만주의(Romanticism), 데카당스(Decadence), 오컬트(Occult), 탐미주의(Aestheticism)적인 이야기를 골라 회화의 소재로 삼는다. 그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이야기, 그들이 모를 만한 내용, 메인 줄거리 이면의, 이후의 이야기를 찾는 탐색꾼이다. 다양한 소스는 글을 시각화하는데 핵심 플롯(Flat)이 되기도 하고 줄거리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나 형식이 되기도 한다. 바스는 슬럼프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전과 다른(하지만 놓고 보면 연장선에 있는) 색다른 주제를 찾는다.


스페이스K 미술관에서 이달 27일까지 열리는 헤르난 바스의 개인전 《모험, 나의 선택 (Choose Your Own Adventure)》에서는 바스가 2007년부터 2021년까지 컬렉팅하고 회화로 재구성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바스는 이번 전시를 끝으로 향후 1년간 개인전을 갖지 않기로 하여 약 15년 만에 마감 기한이 없는 작업 시간을 갖는다. 이번 전시에서 바스와 친해진 뒤, 데드라인의 압박에서 해방된 그가 들고 올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


강경원 kywon0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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